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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공부 - 최재천, 안회경

by 소소블리시스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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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08

지금 부모 세대는 학생 인권이란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때로 선생님에게 불손하게 굴며 마치 인권을 되찾은 줄 착각하며 삽니다. 아닙니다. 진정한 인권 회복은 학생으로 사는 기간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비로소 실현됩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까지 치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거의 20년을 학생으로 삽니다. 인생 100세 시대라서 예전보다 오래 사니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인생의 첫 5분의 1을 다가올 인생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게 인권 차원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생 전체를 온전히 사랍답게 살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p.039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고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교육의 내용이 사실을 분별할 수 있도록 채워져야 하고요.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들의 말이 일반인에게 신뢰를 받아 통용될 수 있도록 사회의 갈등이 잦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위정자들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갈등의 골이 깊으면 진영 논리로 사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커집니다. 저는 무엇보다 앎이 가져오는 사랑이 소중하다고 여겨요. 우리 인간은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결국엔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p.063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문과 학생들에게 하버드대학교에서 냈던 문제를 그대로 내고, 3주 줄 테니 도서관에서 미적분학 책을 펴놓고라도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못 풀었어요. 미적분학 책을 읽을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미국 학생들은 한 시간을 주고 풀라고 하면 못 풀지만, 2~3주를 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풀라고 하면 대부분 푼다는 거죠. 그 정도까지는 중고등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경쟁하는 문제 풀이 훈련만 시키고, 실제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좌우하는 능력을 키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p.097

'자발적 홀로 있음'이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시인 황동규 선생님은 그걸 '홀로움'이라 부르셨죠. 저는 어울리기 좋아하지만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그 시간에 외롭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홀로움, 참 멋진 단어인 것 같아요.

 

p. 102

네, 5일 후에 마칠 일을 5일 전에 끝낸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5일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고요.

그날부터 저는 '미리 한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1주일을 앞서 끝내고자 결심했는데, 처음엔 잘 안되더라고요. '실제로 1주일이 있다'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연습하니까 자동 입력이 됐어요.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은 '1주일이나 2주일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됐어요. 미리 다 해놓습니다. 남은 기간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다시 그 일을 살펴봅니다. 한 번 더 읽어 보고, 조금 고치고, 파일을 저장하죠.

 

p.146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나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실 거예요.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p.192

저는 의대에 떨어져서 이렇게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데, 제 친구들은 은퇴했거나손이 떨리느니 하며 뒷방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안정된 직업을 가졌던 친구들은 지금 천장에 닿아서 한숨을 쉬고 있어요.

저는 아직 천장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지붕 없는 세계에서 살아요. 그래서 비는 많이 맞는데 아직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모릅니다. 제가 돌고래 연구를 시작할 때 앞으로 200년 정도 이 연구를 끌어갈 계획으로 설계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또 어떤 일을 하고 싶을지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내일도 우리의 내일도 무한히 열어둬야 해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됩니다.

 

p.226

오히려 그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판도를 대략 읽고 변방에 있는 비주류를 찾아서 읽어본다고 합니다. 그중에 어느 것은 몇 년이 지나 주류가 된다는 거죠. 지금 주류를 보고 있으면 얼마 후에 주류에서 밀려날 것을 보는 것이고, 자꾸 비주류를 뒤지다 보면 거기서 주류로 진입하는 경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p.285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했어요. 한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죠.

 

이 책을 읽는동안 내가 아이에게 시키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반성했다. 아이가 조금 크면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하는 공부 뿐만 아니라, 아이가 하는 공부가 이 책에 나오는 "공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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