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3
부패를 척결한다는 것을 미국 정치계에서는 '시궁창의 물을 뺀다 drain the swamp'라고 말하는데, 요즘에는 이것이 정치적 술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패를 척결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부패 척결을 이용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p.85
미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집단은 소수의 초부유층과 기업입니다. 미국에는 정당이 하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정당 내에 두 가지 파가 있을 뿐이죠. 이 정당을 월스트리트당이라고 부릅시다. 이 정당의 반에 돈을 대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코크 형제 패거리들입니다. 이것을 공화당파라고 할 수 있죠. 다른 반쪽에 돈을 대는 사람들은 마이클 블룸버그, 톰 스타이어, 조지 소로스 등의 패거리인데, 이들은 민주당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자본가의 자금 지원에 좌지우지됩니다. 양쪽 모두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만 특정한 문제를 놓고 견해를 달리합니다.
p.170
총량이 많을 때는 변화율이 작더라도 굉장한 양이 변합니다.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백 달러에 대한 10% 이익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천만 달러에 대한 5% 이익을 받으시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5% 이익의 총량이 훨씬 큽니다. 엄청난 불평등은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6년 동안 최하위 10%는 일주일에 겨우 커피 세 잔을 더 마실 수 있었던 데 반해 상위 10%는 맨해튼에다 원룸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그 보고서 저자들의 말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 보고서는 총량보다 변화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부의 증가 비율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작았다고 강변했습니다. 따라서 그 정도의 변화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죠. 보고서의 저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평등의 증가를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p.187
계속 증가하는 상품의 총량은 우리가 당면한 지구온난화와 여러 환경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상품의 총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쓰레기의 총량이 증가한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p.214
원시적인 축적과 강탈에 의한 축적의 공통점은 최근에 거대한 파도처럼 국가 및 공공의 재산이 민영화되는 물결이 일었다는 데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정권을 잡자마자 공영주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대로 다 끌어모아서 민영화 작업에 착수했을 뿐만 아니라, 상수도, 교통 등 공공재와 국영기업까지 모두 민영화로 돌렸습니다. 거의 모든 공공자산은 헐값으러 팔려나갔으며 민간기업들은 이때를 자신의 배를 불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공공자산을 탈취하는 속도는 굉장히 빨라졌죠. 그리스 정부는 위기가 닥치자 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국유 자산을 모조리 민영화해야 했습니다. 빚에 허덕이는 국가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파르테논신전까지도 팔아서 민영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p.228
자본축적과 자본구조에 함몰된 사회질서에서 벗어나, 훨씬 더 사회적이고 협동적이며 급속한 자본축적에 휘말리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그려봐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사회를 이룰지,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p.272
보상적 소비주의가 얼마나 만족스러웠습니까? 우선, 그런 제품 중에는 조악한 것이 많아서 쉽게 부서집니다. 자본 입장에서 시장이 포화 되면 안 되니까 제품 수명이 오래가지 않게 만드는 것이죠. 즉 보상적인 소비주의는 가능하다면 매일같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고 제품 수명은 짧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소비시장이 활기를 띨 수는 있지만 소비자들은 피로해지고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소비자의 시간과 노동을 절약해준다는 가전제품 기술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죠.
p.276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 현대 소비주의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광범위한 소외, 정치적 과정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소외, 전통적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인생에 의미를 주었던 제도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소외의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 모두가 결합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소외된 민중들은 불만을 품은 채 소극적인 공격성을 억누르며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져 관심과 애정의 대상도 사라집니다. 이때가 바로 위험한 상황입니다. 다양한 소외로 점철된 세상에서, 누가 방아쇠만 당겨봐라 하는 숨은 분노가 뚜렷하게 감지됩니다 이럴 때 방아쇠를 당기면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소외된 민중은 취약해서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민중 동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이쯤 되면, 표면으로 드러난 이런 전반적인 불안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게 됩니다. 언론 통제를 통해 지배 개념을 관리하는 자본은 그 책임이 자본에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러고는 책임을 뒤집어씌울 대상을 찾습니다. 가령 이민자들, 게으른 사람들, 좀 별난 사람들,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 사람들, 종교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 등에게 그 책임을 씌웁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폭력적인 대결 양상이 벌어지죠. 바로 이런 현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늘에 가려 있던 권위적인 인물이 불쑥 나타나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여 민심을 사로잡습니다.
p.289
이 사태는 자본의 관점에서 보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즉 노동은 사용가치에 불과하며, 생산에 필요한 한 가지 요소일 뿐입니다. 따라서 일회용이며, 일정한 환경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취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노동은 가족의 생활이며, 사회관계이며,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인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일이며, 노조의 일원으로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기업은 효율과 수익률만 강조합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p.324
그런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리카도파 사회주의자가 당시에 한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진정 부유한 나라는 노동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인 나라가 아니라, 하루에 6시간인 곳이다. 부란 잉여노동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과 사회 전체가 직접적인 생산에 필요한 시간 외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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